혈압약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던 당신, 새로운 옵션이 등장했다.
약을 꼬박꼬박 먹어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 몸은 왜 약이 안 듣지?'라며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 최근 메드트로닉(Medtronic)과 레코 메디컬(Recor Medical)이 개발한 ‘신장 신경 차단술’이 그런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심플리시티 스파이럴(Symplicity Spyral),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이름만 보면 게임 캐릭터 같지만, 둘 다 혈압 조절을 위한 매우 진지한 기술이다.
기술은 달라도 목적은 하나. 신장을 향하는 교감신경 신호를 차단함으로써 혈압을 낮추는 이 방식은 기존 약물 요법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미 2023년 FDA 승인을 받았고, 글로벌 심장학계에서도 임상적 유효성이 점차 확인되고 있다.
메드트로닉의 ‘심플리시티 스파이럴’ – 고주파로 다가선 신경 조절
심플리시티 스파이럴은 신장 동맥 내에 삽입되는 카테터를 통해 고주파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에너지는 동맥 주변을 둘러싼 교감신경에 선택적으로 작용하여 신경전달을 억제한다. 구조적으로 보면 스파이럴 형태의 팁이 혈관 벽에 접촉되며 다중 포인트에서 동시에 작동하게 설계되어 있다. 단일 삽입으로 여러 부위의 신경을 조절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술 시간이 짧고 반복 삽입의 부담이 적다. 다만 시술 중 고주파로 인한 열 손상 가능성을 고려해 정밀한 위치 조정과 시술자의 숙련도 확보가 필수적이다. ISO 14708 및 관련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술 기기의 생체적합성 및 안정성 또한 인증받은 상태다.

레코 메디컬 ‘파라다이스’ – 초음파의 물리학이 고혈압을 정조준하다
레코의 파라다이스 시스템은 조금 다르다. 고주파 대신 고강도 초음파(HIFU)를 이용해 신장 주변 교감신경을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방식이다. 초음파는 열이 아닌 물리적 진동 에너지로 작용하므로, 혈관 구조물 자체에는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신경 파괴 효율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테터 내부에 내장된 냉각 시스템으로 혈관 내벽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조직 손상을 방지하는 설계가 돋보인다. 3개의 초음파 트랜스듀서가 360도 회전하며 신경을 타격하는 이 시스템은 미국 및 유럽 CE 인증을 모두 획득했으며, 최근 RADIANCE II 연구에서 수축기 혈압 평균 8~10mmHg 감소라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발표했다.

두 기술의 임상 근거 – 단순 수치 이상의 의미
심플리시티 HTN-3 실패 이후 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메드트로닉은 이후 SPYRAL HTN-OFF MED와 HTN-ON MED 연구를 통해 환자의 약물 복용 여부에 따른 실질적인 혈압 개선 효과를 제시했다. 특히 약물 없이도 혈압이 의미 있게 떨어졌다는 점은 신장신경차단술의 ‘약물 대체 가능성’을 다시금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레코 또한 RADIANCE 연구 시리즈를 통해 위약 대비 우월한 혈압 감소 효과를 입증해 FDA 승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단순히 혈압 수치만이 아닌, 표준편차, 재시술률, 6개월 이후 지속 효과 등에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구축해가고 있다.
환자 선택의 시대 – 누가 이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현재로선 고혈압 약을 복용해도 조절이 잘 되지 않는 환자, 즉 ‘난치성 고혈압’ 환자가 주요 대상이다. 특히 3제 이상 복합제 복용자 중에서도 수축기 혈압이 150mmHg 이상인 경우, 또는 약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지속하지 못하는 환자군에게 신장신경차단술이 고려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보험 적용 전이지만, 일부 대학병원 중심으로 시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ISO 13485 인증을 받은 시술 장비와 함께 표준화된 시술 프로토콜이 점차 정착되고 있으며, 대한고혈압학회와 함께 적응증을 세분화하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의료기술평가와 시장 진입 – ‘기술은 있지만 현실은 아직’
FDA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국내 도입을 위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기술 평가, 보험 수가 책정, 관련 법령 개정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실제로 유럽에선 CE 인증을 받은 지 3년 이상 지났지만, 의료기관 내 사용은 제한적이다. 시술 인력의 훈련, 시술비용 대비 의료적 편익, 장기 효과에 대한 후속 데이터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약물치료에 반응 없는 환자군이 일정 수 이상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기술이 단순히 ‘마이너 옵션’이 아닌 ‘메이저 루트’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는 지금, 치료 옵션의 확장기를 지나고 있다
모든 환자에게 이 시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어떤 환자에게는 이게 ‘마지막 카드’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신장 신경 차단술은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선택은 시작됐고, 질문은 더 정교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실제로 혈압이 떨어지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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